아무리 이것저것 공부해도, 자주 쓰지 않으면 내 능력을 보여주고 보완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멀티로 이것저것 하겠다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할 때, 적어도 필요하다고 느낄 때 배우는 게 제일 좋습니다. ‘나도 한 번?’ 하고 무작정 해보려는 마음은 이제 슬며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었지만, 뭐든 잘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배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이었죠.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거나 타이밍이 안 맞으면 뇌 공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정보를 머릿속에 모은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뭐든 쉽게 얻으면 쉽게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그래도 방법과 타이밍을 안다면 모든 걸 어렵게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공부해서 바로 써먹으면 바로 소화할 수 있어요
게임 튜토리얼로 보는 공부 타이밍
다들 게임 많이 하시나요? 저는 게임을 거의 하지 않지만 요즘에는 Project Makeover에 푹 빠져있습니다. 어느 날 광고를 보다 혜성처럼 나타난 게임에 바로 설치를 했었습니다. 프로젝트 메이크오버는 같은 블록을 3개 맞추면 터지는 3-match 게임입니다. 쓰리매치 게임으로 포인트를 모아서 아바타를 꾸미고 스토리를 해금하는 단순한 구조입니다.
쓰리매치 게임에 아이템이나 장애물 종류가 많습니다. 에메랄드는 폭탄으로만 깰 수 있고, 향수병 옆에서 블록을 터트리면 모아야 하는 아이템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상자에 여러 겹 싸인 구두는 옆에서 여러 번 블록을 터트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다 비슷한데 종류가 많습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도움말을 봤더니 이 장애물 종류가 55가지가 조금 넘었습니다. 게임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뜨악, 저걸 어떻게 다 외운대? 벌써 머리 아프다!’
게임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튜토리얼이 나오더라구요. 일정 레벨이 지나면 하나씩, 또 하나씩 해금됩니다. 도움말처럼 한번에 게임의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셋팅되어 있습니다. 튜토리얼 하나 나오면 당장 써먹을 수 있기 때문에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렇게 필요한 양만큼 적절히 지식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이미 작성이 완료된 도움말을 게임 초반에 아무리 읽어도 직접 겪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필요없는 정보로 뇌 한 켠을 가득 채우시나요? 미래에 볼 도움말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써둬도 초면인 내용은 다시 봐도 몰라요.
노가다 작업으로 보는 공부 타이밍
어떤 일을 힘들게 하다가 쉽게 하는 방법을 알게된 때가 있나요? 진행하는 일의 효율을 크게 올려준 지식은 웬만하면 잘 잊어버리기 어렵습니다. ‘장빠름’ 디자이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함께 일하는 그의 라이벌 ‘계느림’ 디자이너는 오늘도 할 일 천지라며 한숨을 쉽니다. 장빠름 씨는 계느림 씨와 커피를 한 잔 하면서 한탄을 들어주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글자 가로 폭에 따라 자간이 고르지 못하게 보이는 글꼴이 있습니다. 계느림 씨가 그 글자들의 간격을 인디자인으로 하나하나 맞춘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자의 커닝값을 Auto에서 Optical로 바꾸기만 하면 시각적으로 예쁘게 간격을 보정해 주는데도요. 그 외에도 계느림 씨는 이미지를 링크하는 기능을 전혀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각진 따옴표는 둥글한 따옴표로 일일이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장빠름 씨가 옆에서 몇 가지 기능을 알려주자 계느림 씨는 ‘띠용~’하고 놀랐습니다. 계느림 씨는 이때까지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래도 이후에는 장빠름 씨처럼 손이 빨라졌습니다. 더 이상 계느림 디자이너는 느리지 않습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기능을 배우면 잊어버리기가 힘들어요.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있으니까 이제 지혜로 넘어가봅시다. 내가 속한 환경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요. 그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주변 환경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겠죠.
심리학 책을 종종 읽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알아두면 다 좋은 줄 알았어요. 반면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그 느낌은 잘 몰랐습니다. 남들은 책 같이 살지 않는다며 불만만 가득했었어요.
바꿀 수 없는 환경, 극복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때 그 이 팀장님은 왜 나를 미워했나
M사에 다닐 시절, 그때 그 팀장님은 왜 저를 미워했을까요? 사실 팀장님은 저를 미워한 게 아니에요. 제가 보고 형식을 잘 갖추지 못해서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 방법을 알려주시고 계셨던 거였어요. 불러서 뭐라고 하시는 건 그래도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좁은 시야로는 상황 판단이 제대로 안 되었지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팀장 입장의 책을 읽으면 팀장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아니었어요. 팀장은 팀장 위치에서 나름의 고민을 할 거예요. 저는 좋은 직원, 일 잘하는 직원 되는 방법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혹은 팀장님은 나만 미워해, 같은 자극적인 제목도 괜찮고요. (보통은 ‘일 잘하는 직원’으로 연결됨.) 어차피 그런 책 안에 팀장님의 기분이 예측되어 있어요. 한두 사람이 겪는게 아니니까요. 세상엔 너무나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답이 이미 있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당시에 답을 코 앞에 두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어릴 때 제가 책을 잘 선정했다면 그 환경에서 적응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지금 처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아야 다른 곳에서도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레고를 거실 바닥에 흘렸을 때 밟으면 아프겠죠? 그럼 그 레고를 치워야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그걸 귀찮다고 발로 밀어두면 나중에 또 밟게 됩니다. 미해결된 문제는 내 안에 지긋히 눌러앉아 계속 나를 괴롭힐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가고 싶은 회사가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늘 그 회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등한시되니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그걸 저는 사람 사이의 문제로 착각했습니다.
심리책도 직원 기준이 아니라 관리자나 경영자 기준으로 읽었습니다. 나같은 모난 직원을 어쩌나 하구요. 신기하게도 책을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다른 직원들까지 제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장이 된 것처럼요. 지금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이 길이 맞는지 생각했습니다. 고민의 방향이 완전 잘못됐죠. 본질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책을 읽어도 갈등이 더 깊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회사 안에서 재미를 찾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방향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시 생각하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적절한 정보를 찾았더라면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나를 바꿀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했다면 인정 받아서 가고 싶던 회사에 정말 갈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필요할 때 정보를 습득하면 빠르게 체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이 맞는 자료를 찾으면 지금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지금’을 잘 살기 위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 조금 더 안테나를 세워야겠습니다.
당시의 저는 어떤 선택을 했습니다. 과거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 다시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많은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겠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과거의 저를 다시 만난다면 이 글의 내용을 꼭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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