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내가 좋아하는 활동과 잘하는 활동을 구분하고 정리했다. 이제 이 데이터를 토대로 내가 어떤 진로로 방향을 정해야 성과도 잘 나오고 인정도 받을지 생각해보자.
결과물이 있는, 즐거운, 인정 받는 활동의 교집합 찾기
이왕 일하는 거 강점을 살리면 좋지
결과물이 있고 즐거우면서 인정까지 받는 활동은 강점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일을 하면 일하는 나도 즐겁고 결과물도 잘 나오니까 사람들도 좋아하게 된다.
나에게는 디자인 쪽으로 4개 있다. 캐릭터, 상세페이지, 라인아트, 굿즈 제작이다.
캐릭터 그리기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전반에서 제일 높게 평가받는 부분이다. ‘다이어리 꾸미기(일명 ‘다꾸’)’부터 시작해서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중학생 때도 친구들 책상에 그림 하나씩 그려서 붙여줬다. 고등학생 때는 플리마켓에 나가서 캐리커쳐를 그려주고 직접 만든 스티커를 팔았다.
2018년 초에 연어 ‘모니’와 토끼 ‘아코’를 조합한 ‘연어토끼 salmon rabbit’ 캐릭터를 만든다. 그림 책을 쓰고 잠시 쉴 때 만든 캐릭터로 취직 전까지 이러스트를 그려서 sns에 업로드했다.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해서 캐릭터를 그리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빕스 이벤트 연어전展 때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신기하게 캐릭터는 잘 그려진다. 편집 디자인 일을 처음 시작할 쯤에 편집이 어려워 힘들어했지만 일러스트 하나는 기깔나게(?) 뽑아서 과장님께 인정받은 기억이 있다.
상세페이지 디자인
어렸을 때 마트 완구 코너에 가면 이쪽부터 저쪽까지 박스를 모두 뒤로 돌려보며 읽었다. 그 많은 박스 뒷면을 읽을 만큼 ‘홀리는 문구’에 관심이 많았다. 상세페이지를 들여다볼수록 갖고 싶어지는 그 요상한 마법을 부리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아이리버 mp3를 구매하면서 그래픽과 멘트에 감탄했다. 이런 상세페이지는 대체 누가 만드나 싶었다.
그리고 커서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어른이 됐다. 상세페이지만 잘 만들어도 판매량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지금도 쇼핑으로 물건을 사는 것보다 ‘물건을 사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 게 좋을 정도니까.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던 회사에서 상세페이지를 만들면서 스킬이 늘었다. 상세페이지에서 디자인 만큼이나 마케팅이 중요한 만큼 영업쪽 마케팅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통계를 내는 등의 마케터가 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데, 모 사장님이 자꾸 날 마케터라 불러서 자꾸 망그러진다. ㅋㅋ)
갖고 싶게 만드는 전개 방식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의외로 상세페이지 안에 들어가는 그래픽이 호평이었다. 복잡한 그래픽도 만들고, 단순한 픽토그램이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게 선택에 주의를 기울인다.
라인아트
선 위주로 그린 일러스트. 보통 설명서에 들어간다. 실험 기자재 회사에서 근무할 때 도전해서 취미로 조금씩 좋아하는 것들을 라인아트로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못할 것 같았는데 사장님이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했더니 의외의 적성을 찾았다.
사진을 찍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일이 라인을 딴다. 이미지를 본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나는 그림을 꾸준히 그렸기에 주위에서 잘한다는 반응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요즘은 3d 프로그램 ‘블렌더’로 더 복잡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굿즈 제작
사실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다. 요즘은 문구 디자인을 하는 작가 분들이 아주 많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정보를 어떻게 얻어야 할 줄을 몰랐다.
처음 만든 수작업 노트. a4용지에 표지를 덧대고 스테플러로 찍어 수첩을 만들었다. 금박 효과를 내고 싶었지만 박을 넣을 줄 몰라 표지에 프린트한 까만 그림 라인을 모두 금색 펜으로 땄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겐 이렇게 열정의 결정체이다.
이후에도 여러 굿즈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데이터가 실물로 짠! 하고 나오는 게 신기했다. 프리마켓에서 하나 둘씩 팔릴 때는 더더욱 신기했다.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다? 심지어 잘 팔린다? 무언가를 만들고 파는 경험에서 오는 짜릿함은 한번 느껴보면 포기할 수 없다.
디자인 문구 회사에서 일할 것이 아니라면 나만의 브랜드를 갖추는 작업이 함께 필요하다. 사람들은 디자인 문구를 ‘사용할 용도’로 사는 게 아니라 ‘시각적인 만족’을 위해서 구매한다. 사용 용도였다면 펜도 종이도 아무 거나 쓰면 된다. 요즘은 굿즈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과정과 비용도 투명하다. 때문에 굿즈를 팔려면 브랜딩이 선행되어야 한다.
몇 개를 합쳐서 과정으로 묶기
이렇게 4가지를 중 몇 개를 합쳐서 과정 하나로 묶어버릴 수도 있다. 상세페이지, 라인아트는 굿즈 제작과 패키지로 묶을 수 있다. 판매까지 한다면 쇼핑몰 브랜딩도 가능하다. 그래서 굿즈 쇼핑몰을 운영하면 상세페이지, 라인아트, 굿즈 제작, 패키지, 쇼핑몰 브랜딩 혼자 모두 진행할 수 있다.
(단, 일 특성상 조그만 경우가 많아서 내가 이 일들을 계속 잡고 있으면 이후에 위임하기가 어렵다. 내가 피곤해진다. 작은 회사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환경과 비슷하다.)
기회비용을 생각해보기
4가지 방향이 너무 달라서 방향을 잡기 어렵다면 최대한 비슷한 활동을 묶는 방향이 좋다. 4개 중에 1개를 살리는 것보다는 3개를 살리는 게 더 빠른 길이다.
방향을 결정하고 선택되지 못한 능력들은 지금 쓰이지 않는다고 조바심내지 말자. 세상에 헛된 경험은 없으며 당장 쓰이지 않을 뿐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아직 방향을 찾아 여행 중
표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 정리에 도음이 되니 한번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슷한 활동으로는 이키가이1가 있다.
최근에 진로를 정하느라 고민이 많았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주위에서 잘한다고 했던 활동과 내가 좋아하는 활동의 인식 괴리를 줄일 수도 있었다. 다음에 내가 갈 곳은 어디일까.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덧붙여 나는 재주가 많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잘한다는 말은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다’는 말과 제법 닮았기 때문에.
- 일본어로 ‘이키(삶)’와 ‘가이(가치)’라는 의미. 우리말로 번역하면 ‘삶의 보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인생의 철학을 상징하는 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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