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 인쇄는 왜 그때그때 다를까 -3. 이 정도 차이는 괜찮다, 마! (완)

합판 인쇄를 맡길 때마다 색이 달라지는 이유는, 감리가 생략되어 날씨나 온습도 같은 환경에 따라 색이 변할 때 바로잡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시간은 모두 돈입니다.

인쇄물 색상이 의도대로 나오지 않아도,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어차피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너무 심한게 아니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파는 입장에서 영 불안하다면 ‘만든 시기에 따라 색상 차가 생길 수 있으며, 교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멘트를 써두면 됩니다.

이번에는 생활에서 볼 수 있었던 예시를 몇 개 들고 왔습니다. 참고하시면 마음을 가다듬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정도 차이는 괜찮아요

캐릭터 세계관을 잘 만들어두면 사람들 마음 속에서 캐릭터가 살아 움직입니다. 차라리 더 중요한 건 라이센스 여부입니다. (소위 말하는 ‘짭’을 사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캐릭터 이목구비가 다르게 생겨서 ‘둘이 형제인가?’ 같은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니라면 충분합니다.

귀여운 김바덕 캐릭터

색상이 조금씩 다른 캐릭터 굿즈들
같은 캐릭터의 색상이 굿즈별로 조금씩 다르다

얼마 전 핫트랙스에서 뱃살이 사랑스러운 김바덕 굿즈를 발견했습니다. 뱃지, 엽서, 인형, 키링 등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답니다. 여러 개를 한번에 모아보니 색이 미묘하게 조금씩 다릅니다. 금속 뱃지는 전체적으로 채도가 높고, 엽서에 그려진 바덕이는 부리가 더 탁하네요.

그렇다면 사진에 있는 김바덕 3마리 중 어떤 쪽이 진짜 김바덕일까요? 정답은 모두 공식 굿즈이므로, 모두 진짜 김바덕입니다. 색감 차이 조금, 똑같은 키링을 세 개씩 사서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우표 수집가 책 표지

같은 색이지만 명도가 다른 표지

굿즈는 아니지만 색이 꽤 차이나는 책표지를 들고 왔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다가 발견한 우표 관련 도서입니다. 두 권 색상 차이가 심하네요. 검색해보니 원본은 앞에 있는 후라보노 색입니다.

이 책표지를 서점에서 보았을 때, 이 정도 색이 차이 나도 책을 직접 사는 게 아니라 선물로 받았다면 색 차이를 신경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포인트는 교보에서 표지가 진한 책을 불량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엽서나 스티커 같은 문구라도 이 정도 범주 안이라면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한 개를 단품으로 보았을 때 크게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부분은 인쇄 시기에 따라 색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색이 다르게 나왔어요’의 예시

지난 포스팅에서 인쇄 오차의 범위가 넓다고 언급했었습니다.

브로슈어 색상 차이

리플렛 색상 차이
(좌) 2차 인쇄본 / (우) 1차 인쇄본

2023년 하반기 초에 회사에서 브로슈어를 제작했습니다. 심플한 그래픽에 색을 절제한 스타일이었지요. 처음 1차 브로슈어를 받았을 때 우측을 받았는데요, 제가 지정한 색보다 조금 못생기게(?) 나왔습니다. 2차 인쇄본은 제 의도대로 나왔습니다. 왼쪽보다 면의 색이 더 푸르고 연하게 나왔습니다.

문제는 3차 인쇄본이었습니다. 안쪽 면 짙은 초록색이 모두 갈색으로 교체되어 나왔습니다. 제가 지정한 색에는 M값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프로파일 때문에 cmyk값이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을 거고요. 색을 지정할 때 이름에도 M값이 없었고 별색도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알 수 없는 오류!

이곳 저곳 인쇄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데이터 오류가 아닌 인쇄 프로세스에서 합판 데이터 내의 별색 오류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습니다. 다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시고요.

이렇게 다르게 나오면 업체에 사진을 보내고 다시 제작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만약 문구 제품이었다면 제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서 교환 대상이었겠지요.

리플렛 색상 오류
(좌) 2차 인쇄본 / (우) 3차 인쇄본

여담이지만 이 건은 재제작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느라 인쇄물을 회사로 바로 보냈고, 회사 사람들도 어련히 잘 나왔겠거니 싶어서 접지된 인쇄물을 안 펴보고 바로 거래처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제가 출근한 어느 날 브로슈어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이미 제작하고 두 달 이상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내용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부분이라 될 때까지 쓰다가 리뉴얼할 때 폐기되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기도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

색상 차이가 좀 난다며 같은 스티커 제품을 들고 물어보시는 분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 분들께 괜찮다고 말씀 드렸어요. 작은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되는 문구 특성상 걱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글에 실었듯이 내용이 더 중요하고 손님들이 하나씩 사기 때문에 괜찮아요.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걱정할 시간에 작업을 하나 더 하는 것이 낫습니다. 정말로요. 저도 오늘 기도 한 건 하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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