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페이지에 상세 스펙 강조할까, 말까?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 상세페이지를 쭉 보다가 모르는 말이나 개념을 만날 때가 종종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하나를 파고드는 성향이 강해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전부 찾아보고 이해합니다. 다들 어떻게 하시나요?

  1. 모르는 말이나 개념이 나오면 이해할 때까지 다 찾아본다
  2.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다니까 뭐라도 좋겠거니 생각한다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MD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품을 분석하고 장점을 뽑아 상세페이지를 만들죠. 이번에 쇼핑몰에 업로드를 고민하는 손풍기 정보를 찾다가 탁상용 선풍기 상세페이지에서 아래 멘트를 보았습니다.

책상에 올려둔 미니 선풍기
여름이니까 손풍기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고효율의 BLDC모터가 탑재되어 4.5w 출력으로 10,000시간 이상 시원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독창적인 서큘레이터형의 공기역학적인 구조를 채택하여 바람의 공기 순환과 직진성이 우수하며 일반 탁상용 팬과 비교하기 어려운 풍량을 자랑합니다.

항공기 제트엔진에 사용하는 고성능 BLDC모터를 적용하여 2500RPM의 강력한 토크를 발생시키며 내구성이 뛰어나 쉽게 고장나지 않습니다.

멋진 그래픽이 곁들여진 스펙 나열 문구를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뭐가 좋은 거예요?🤔

전체적으로 보면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빠져있는 편에 속합니다.

1. BLDC 모터는 DC 모터 대비 얼마나 효율적일까?

선풍기에는 보통 dc 모터나 bldc 모터가 들어가는데, 서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내용은 생략할게요. (각 모터의 장단점은 인터넷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선풍기를 제대로 사려고 많이 찾아본 사람들은 이 내용에 대해서 알겠지만, 그냥 탁상 선풍기 사려고 검색했다가 처음 접한 사람은 ‘일단 영문으로 뭐라도 적혀있으니까 그냥 좋은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최소한의 dc 모터와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한 자료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어떤 선풍기에 dc모터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집에서 쓰던 선풍기 모터가 뭔지 알아야 비교라도 하죠.

2. 4.5w로 출력이 되면 뭐가 좋은 걸까?

출력값은 충전기나 usb 케이블 살 때 종종 봤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문구가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은 댓글로 설명 부탁드려요.)

3. (총) 10,000시간 가동 조건은 어떻게 될까?

높은 확률로 1단으로 틀었을 때 시간일 겁니다. 보통 숫자를 크게 쓸 수 있는 기준으로 적을 테니까요.

이럴 때 한쪽 구석에 작게 ‘*1단계 가동 기준’이라도 적혀있어야 이 1만 시간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만약 3단계로 작동했는데 1만 시간(하루 8시간 기준으로 3년 조금 넘게)을 쓰지 못한다? 저 작은 멘트 하나 없다는 이유로 진상이 붙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충전 시 1만 시간인지, 총 1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수명인지 정확히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1만시간’ 키워드만 기억할 텐데요.

카피에 거품을 넣어서 고객의 환심을 사면, 거품이 꺼져서 고객이 실망하는 지점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4. 독창적인 서큘레이터형 공기역학적인 구조가 뭘까?

‘독창적인’과 ‘서큘레이터형’과 ‘공기역학’ ‘공기 순환’과 ‘직진성’, ‘우수함’이 한 문장에 들어갔는데 모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독창적인 서큘레이터형은 어떤 형태이며, 공기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공기가 얼마나 앞으로 가는지, 하나도 설명이 없어요.

그리고 ‘직진성’ 같은 표현은 되도록 지양하자구요. 물리 시간 교과서나 전공 서적에 나올 법한 단어잖아요.

5. 일반 탁상용 팬과 해당 제품의 풍량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걸까?

비교하기 어려워서 비교를 안 해둔 걸까요?

6. 항공기 제트엔진 고효율 BLDC이면 효과가 얼마나 좋은 걸까?

‘항공기 제트엔진에 사용하는 고성능 BLDC’도 탁상용 선풍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선풍기에 항공기 제트엔진 급 성능을 기대하지는 않으니까요. 가격대도 다르고 용도도 다릅니다. 항공기 제트엔진 BLDC와 선풍기 BLDC 모터를 빗대어 설명하는 이유가 빠져있어요.

7. 2,500RPM이 어느 정도일까? 토크를 발생시킨다는 말이 무엇인가?

RPM은 ‘분당 회전수’인데,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단위는 아닙니다. (저는 보통 HDD 살 때 종종 보았습니다) 토크는 ‘물리량’이라고 하네요. 쉽게 풀이하면 선풍기 날개가 1분에 2500번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물론 이것도 강조해 두었으니까 강풍일 때 얘기라고 유추하는 거지 적혀있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습니다.

날개가 1분당 2500번 돌아간다는 건데, 사실상 이 숫자로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없습니다. ‘날개가 그만큼 빠르게 도는가 보다’ 정도죠. 대충 숫자가 크니까 좋게 보일 거라고 휴리스틱을 이용했네요.

숫자와 함께 직접 보여주려면, 500rpm 제품과 1,000rpm 제품 등을 자사 제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우리 제품은 2,500rpm이라 이만큼 바람이 셉니다. 500rpm 제품 좀 보세요. 바람이 코에나 닿을까요?’하고 비교하는 용도로 쓰는 게 좋습니다.

10억이란 돈이 사람들에게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한 달 벌어도 월급이 300만원…’, ’10억이면 어디 지역에 아파트를 하나…’ 이렇게 가치를 머릿속으로 환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 자체만으로 할 수 있는 건 크게 없어요.

8. 위 내용에 비해 너무 빈약한 ‘내구성이 뛰어나 쉽게 고장나지 않음’

마지막에 나오는 ‘내구성이 뛰어나 쉽게 고장나지 않음’이라는 말은 앞쪽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서 너무나 쉽고 친절하게 써두었습니다.

반면 내구성을 증명하는 근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감정으로 설득하는 방법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 감정도 없잖아요. 결국은 스펙을 보기 어렵게 나열한 거예요.

상세페이지에 상세스펙 강조할까, 말까?

저는 전문용어보다는 최대한 일상에서 비교해볼 수 있게 쓰는 글을 지향하는 편입니다. 스펙을 강조하기보다는, 스펙을 활용해서 비교하는 쪽을 추천드려요.

상세페이지에 상세스펙, 강조하자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일상 용어를 사용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스펙도 웬만하면 다 하단 상세보기 쪽으로 미루고 되도록 편하게 말하는 방식을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스펙을 강조하면 효과를 발휘하는 타겟층이 있습니다.

특정 정보가 꼭 필요한 타겟층

상세 스펙으로 비교하는 덕후군단

바로 덕후분들이 많은 제품군입니다. 전자기기(게이밍 키보드·마우스 등)가 그 예입니다. 이 분들은 스펙 항목에 관한 정보를 꿰뚫고 있습니다. 주로 스펙을 기반으로 특징을 비교합니다. 각 항목에서 그 숫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심지어 판매자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펙 정보를 숨겨놓으면 그 제품 성능을 의심하게 됩니다.

dell 모니터 설명
사진 출처: dell 상세페이지

저도 이어폰이나 스피커, 모니터 등 각종 전자제품을 좋아해서 아이쇼핑을 자주 하는데요, 이런 상품을 둘러볼 때 스펙 없이 느낌만 강조된 상세페이지를 보았을 때 좀 의아했어요. 저절로 스펙을 찾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제품군 평균과 비슷하거나 평균보다 낮은 스펙인데도 각종 미사여구로 잘 꾸며둔 상세페이지를 보니 조금… 그랬어요.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티셔츠를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17수인지 20수인지보다는,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원단이 어느만큼 두꺼운지 얇은지가 더 중요해요. 아크릴 현판을 구매한다면 스카시(입체글자)가 3T인지 5T인지 보다도 글자가 얼마나 입체적으로 보일지가 더 궁금해 하겠죠.

그런데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스펙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고 경험도 풍부합니다. 느낌에 대한 묘사가 없어도 스펙으로 차이를 판단할 수 있어요. b2b 거래를 위한 상세페이지를 만든다면 스펙을 잘 보이게 해놓는 편이 좋아요. (제품에서 스펙을 찾기 어렵다면 논외 대상이 됩니다.)

다소다가 선택한 스펙 활용 방법

스펙은 살짝 언급 정도만

보통 소비자와 바로 접하는 상세페이지를 많이 작업했었기 때문에, 상세페이지를 만들 때 최대한 느낌을 살리되 스펙을 양념 정도로 사용했어요.

상세페이지에 스펙을 적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제품에 관한 명확한 정보를 전해주려면 스펙 내용은 상세페이지 안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포스팅에서 상세 정보 파트에 관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아래쪽 상세 정보 파트에 스펙 정확히 기입하기

상세 정보 파트를 보통 아래쪽에 많이 두지만 간혹 위쪽에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cs와도 연결되는 부분이어서 스펙은 최대한 많이 확인해서 정확히 써두는 게 좋습니다.

상세페이지 제품정보 파트
보통 상세페이지 아래쪽에 들어가는 제품 상세정보 파트

타겟이 보고 싶어하는 정보를 주자

b2b인지 b2c인지에 따라 소구점이 다르니 타겟이 보고 싶어하는 자료와 정보를 줍시다. (그런데 어차피 b2b 거래도 사람이 결정하는 거라서, b2c 상세페이지를 잘 만들어 두고 ‘대량문의 환영’ 하나 넣어도 설득력이 충분히 있긴 합니다)

마치며

그래서 탁상용 선풍기 뭐 샀냐면요

상세페이지도 스펙도 리뷰도 열심히 살펴보면서 루메나 탁상용 무선 선풍기 FAN STAND 3Z를 구매했어요. 탁상용 선풍기로 잘 선택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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