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 때문에 철분제를 구매했다. 철분제 패키지가 불편해서 보완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하나씩 꺼낼 수 있는 자판기 같은 디스펜서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후루룩 뚝딱 만든 철분제 디스펜서. 종이로 간이 디스펜서를 만드는 과정을 간략히 정리했다.
아이디어 정리하기
바이알 형태로 된 철분제를 구매하였다. 아버지 지인께 받아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두 달 치 구매했다. 철분제는 3개월 정도 연달아서 먹는 게 좋다고 하니 참고하자.
불편했던 이유는 패키지
이 제품의 큰 단점은 패키지였다. 은박 종이로 지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 은박 지지대는 한쪽이 박스와 붙어있어서 다른 한쪽만 분리된다. 그래서 병이 흔들리면서 모두 엉켜 쓰러졌다. 세우려 할수록 다른 것도 넘어진다.
바이알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바이알이 한번 쓰러지면 한 쪽만 고정된 은색 지지대를 열고 모두 꺼냈다가 다시 정렬해야 했다. 때문에 철분제 박스를 반드시 가로로 두어야 한다. 세워둘 수 없어서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이 철분제 패키지를 보고 예사롭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두 달 분량이고 이 철분제를 먹는 동안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두 달 정도 사용할 만한 간이 디스펜서를 만들기로 했다. 재료는 공차가 크고 상대적으로 구상하기 쉬운 종이로 선택했다.
지기구조 스케치 -1차
손으로 도면 그리기: 어떻게 생겼을지 조금씩 빚어보기
‘디스펜서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싶은 아이디어를 슥슥 그려본다.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간략하게 스케치한다.
캔 매대처럼 아래쪽에서 바이알을 하나씩 뺄 때마다 또르륵 밀려나오는 방식으로 구상했다. 위쪽에는 여닫을 수 있는 뚜껑을 만들었다. 바이알을 추가로 넣을 수 있는 입구이다.
축소한 도면 출력하기
대략적인 도면을 그려서 집에 있는 잉크젯 프린트로 출력했다. 여기에 칼질하고 접고 붙여서 기본 구조를 체크한다.
지기구조는 모두 독학으로 진행한다. 매일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어설픈 구석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일이 아닌 만큼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도전도 자유롭다. 다르게 말하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취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조립 테스트
직접 입체 구조로 만들어보고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펴본다. 몇 군데를 체크할 수 있었다.
- 뚜껑 방향: 리필을 넣는 부분이 앞쪽 방향으로 되어있다. 구조상 뒤에서 넣어야 차례차레 넣을 수 있다. 지금처럼 앞쪽이 열리면 뒤쪽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뚜껑이 열리는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 잠그는 부분: 안쪽으로 숨긴 날개를 몸체에서 뚜껑 부분으로 옮겼다.
3. 바닥: 위쪽과 아래쪽 폭이 다른데 바닥 조립 부분을 위쪽과 똑같이 만들었다. 아래쪽 바닥의 길이를 연장해야 한다.
4. 굴러가는 바닥 부분: 굴러가는 받침대 부분을 벽면에 붙여야 한다. 단면 인쇄할 예정이라 안쪽 면에서 받침대를 붙일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 모서리 부분에 곡선을 넣어서 곡선 끝 각 부분에 맞추어 붙이기로 했다. 아래쪽 사진에서 옆면마다 곡선으로 파놓은 곳이 보일 것이다. 그 끝을 맞추어서 받침대를 붙인다.
지기구조 스케치 -2차
- 발 지지대: 칼선으로 접히는 부분에 지지대 발을 조그맣게 만들었다. 패키지 뚜껑을 닫으면 종이가 결대로 휘어 뚜껑이 볼록해진다. 때문에 폭이 좁고 납작한 패키지는 세울 때 무게 중심을 잡기 어렵다. 그럴 때 발로 지지대를 만들어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보완한다.
- 잠금 장치: 아래쪽에 잠그는 부분을 만들었다. 바닥이 바이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열릴 것 같았다.
- z축 모서리 수정: 지금은 z축 모서리 4개에 곡선이 들어있다. 앞에서 보면 요상하므로 앞에서 보면 민자로 보이게, 옆에서 보면 곡선을 볼 수 있게 한다.
- 경사 지지대 추가: 맨 아래쪽에 경사 지지대를 만들었다. 아래쪽에 경사 지지대가 있어야 디스펜서에서 물건이 굴러서 나올 수 있다.
A 구조에서는 맨 아래쪽에 있는 바이알이 밀려나오지 않는다. B처럼 굴러나오는 속도를 주기 위해 뒤쪽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야 한다.
인쇄하기
지기구조 도면 확정하기
이렇게 저렇게 도면을 수정 후 확정한다.
디자인 2종으로 인쇄소에서 디지털 인쇄로 접수했다. 디지털 인쇄로 접수하면 소량으로 인쇄할 수 있다. 단, 소재를 다양하게 고르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 랑데뷰 240g (명함 정도 두께로 패키지를 만들기에는 많이 얇다)
- 유광 코팅으로 광택 추가 (두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디지털 인쇄
도무송(톰슨-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기)과 오시(누름선) 후가공을 진행하지 않았으므로 인쇄 내용 그대로 도착했다.
만들어보기
이 패키지를 그냥 접으면 울퉁불퉁해진다. 보조선도 없이 접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시(누름선)을 내주어야 한다. 도무송을 넣을 때 오시를 함께 넣을 수 있다.
나는 비용을 줄이고 노동을 늘렸다. 내 노동력을 비용으로 넣은 셈이다. 손이 은근히 많이 가는 작업이다. 다음 번엔 반드시 도무송으로 주문하리라 다짐해본다.
빛에 비추면 접는 선을 표시한 자국이 드러난다. 상당한 노가다 작업이므로 될 수 있으면 도무송으로 맡기자.
패키지 도면을 모두 자른 후 접착 부분에 양면테이프를 붙인다.
선을 따라 잘 접고 양면테이프를 각 위치에 맞게 붙여서 조립한다.
보완할 내용 정리하기
잠금 부분을 아래쪽에 있던 걸 그대로 복사해서 만들었다. 조립해보니 방향이 틀렸다. 바로잡아주자.
뚜껑에 있던 발을 몸체 쪽으로 옮겼다.
이 부분들은 데이터만 수정하였고, (아마도 없겠지만) 다음에 만들게 된다면 반영하기로 했다.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위 지기구조 스케치 부분에서 경사대를 추가했다. 이 경사 지지대에서 종이가 접히는 방향이 중요했다. A처럼 아래를 접어넣어 한 면을 접착하면 종이가 펴지려는 힘 때문에 들려서 바이알이 내려오다 멈춘다. 그래서 옆쪽 날개를 없애고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저절로 펴지게 B형태로 경사대를 다시 만들었다.
완성한 모습
직접 만든 디스펜서에 철분제 바이알을 채웠다. 하나를 꺼내면 다음 하나가 굴러나온다.
마치며
물론 바이알을 다른 통에 쟁여두고 그냥 먹어도 된다. 그게 쉽고 빠르다. 그래도 디스펜서를 만들었기에 두 달간 바이알을 재미있게 꺼낼 수 있었다. 철분제를 꺼낼 때마다 뿌듯했다. 연구하는 적성에 맞는 적절한 활동이었다.
참, 빈혈은 많이 나아졌다. 손톱이 하얬었는데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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